[일간 애자일#712](6/14) “나를 찾기 위해 떠날 거야” 퇴사한다고 마음 비울 수 있을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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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기 위해 떠날 거야” 퇴사한다고 마음 비울 수 있을까?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지.” 20여 년 전 이런 유행어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대 자가격리 시대를 맞이한 우리는 그 유행어에 마냥 웃을 수 없게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지 벌써 2년째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명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불교는 명상을 통한 득도를 강조했다. 유교 역시 이 영향을 많이 받아, 조선시대 주요 유교 사상가들도 명상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을 늘어놓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인 요즘 우리가 다시 명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DBR 300호를 통해 명상의 중요성을 알아보자.

원문: https://bit.ly/3cEBbpq


완벽한 의사결정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

각자의 의사결정 지름길, 휴리스틱: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시나요? 예전에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합리적 의사결정 모델’에 근거한다고 했습니다.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 가능한 대안을 분석 및 평가하여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모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대부분의 의사결정 상황의 복잡도와 불확실성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개개인이 나름대로의 ‘의사결정 지름길’을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죠.

각자가 의사결정의 지름길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이를 휴리스틱(Heuristic)이라고 합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최초의 심리학자인 트버스키(Tversky)와 카네만(Kahneman) 교수가 1974년에 Science 저널에 소개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소개된 휴리스틱은 3가지로 나눠집니다. 이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의사결정에는 필연적으로 오류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문: https://bit.ly/2TSJWpl


낯선 ‘바깥’을 포용한 사람만이 성숙할 수 있다

이유기의 유아들은 엄마의 젖이나 분유의 젖병에서 떨어져 나와야 한다. 이때 대개는 엄마와 아기가 한바탕 전쟁을 치룬다. 아기는 기어이 모유나 분유를 달라고 하고 엄마는 한사코 죽이나 밥을 먹이려고 한다. 라캉(Jacques Lacan)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서 꼬마의 바깥은 아버지의 이름이다. 이것은 유아가 성장을 위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모든 새로운 단계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이름은 성장과 성숙을 위해 반드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외부이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경험되는 고통스러운 현실이기도 하다.

​또 누구나 이 바깥에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다. 그래서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젖병을 갖고 다니는 아이도 있고,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도 있다. 이처럼 바깥에 적응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경우를 ‘퇴행’이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 나오지 못하면 아무리 키가 크고 몸무게가 불어도 바깥이 없기 때문에 미성숙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즉 라캉식으로 보면 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이다.

나이가 드는 일은 외부와 만나는 기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고 철이 드는 일은 낯선 외부를 점점 받아들이는 삶이다. 그렇다고 철이 들어가며 성숙해지는 여행이 자연스럽게 목적지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즉 인간의 성장과 성숙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든 싸워 이겨내고 얻는 전리품이다. 그러니 우리는 성장하려면 먼저 바깥으로 나서려고 해야 한다. 외부로 가서 이웃을 살피고, 또래들을 만나 자신을 돌아보고, 바깥 자체와 대화하고 소통하려 애써야 한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할머니가 보여주듯이 소통의 변함없는 비결은 배려. 사랑, 헌신이며 바깥은 저 멀리가 아닌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집과 사무실의 컴퓨터 스위치를 끄거나, 창문을 열거나, 사무실 복도에 나가 주위에 서 있는 여러 손님에게 손을 내밀어보라. 그곳이 바로 자신이 끊임없이 성숙되어 가는 화수분이고, 성숙한 삶으로 거듭나는 지점이다. 부처가 설법할 때 꽃을 들어 보여주자 제자 중에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던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재현되는 진정한 소통으로 들어가게 하는 첫째 관문이다.

원문: https://bit.ly/3gn5qUm


글쓴이: 정의의소

Agile Coach, Organizational Change Coach @Samsung Electronics 팟캐스트 MC : 새꿈사 (새로운 조직문화를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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